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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수감사절] 제목: 주님을 감동시킨 사람. 눅 17:11-19
  글쓴이 : 강수인     날짜 : 23-11-18 21:37     조회 : 10    
   추수감사절.주님을 감동시킨 사람.hwp (32.0K), Down : 0, 2023-11-19 10:23:37

[추수감사절] 제목: 주님을 감동시킨 사람.

교독문: 106. 감사절(2). 말씀: 눅 17:11-19. 찬송가: 588. 공중 나는 새를 보라.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누가:Luke, Lukas(인명) (Louka'" , Luke, Lukas) 「빛나다」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이어서 쓴 저자. 라틴어 `루카누스' 또는 `루키리우스'의 약어인 모양이다. 사도 바울의 동역자이다. 로마에서 골로새 교회와 빌레몬에게 문안인사를 보냈다(골 4:14,몬 1:24). 사도 바울은 전자에서는 `사랑을 받는 누가', 후자에서는 `나의 동역자 누가'라고 기록했다. 누가는 후에 바울이 로마에서 디모데에게 보내는 두번째 편지를 쓸 때 같이 있었으며(딤후 4:11), 바울은 "누가만 나와 함께 있다"고 감사하고 있다. 누가가 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합치면 그 분량이 신약성서의 1/4이 좀 넘으며 문체가 아름답다.

● 오늘은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은혜를 헤아리며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입니다. 해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금년에는 더욱 어려워진 것을 절감하는 가운데 풍요로운 가을은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고 차가운 겨울이 성큼 다가옴으로 우리들의 마음까지 춥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계절적인 변화만큼 현실 경제가 어려운 때에 과연 우리의 마음속에 진정한 감사가 우러나오고 있는가? 추수감사절종교적인 예년의 행사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축복의 절기인가? 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와 확신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추수감사절의 성경적인 기원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삼대 감사 절기는 결코 풍요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애굽의 속박과 광야 사십년의 고난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현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우리가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이 요구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 성에서 쫓겨나 버림 받은 지옥의 가족들이 주님을 부르짖고 만나 기적과 구원을 봄.

1. 감사할 것이 없는 사람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살전 5:18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처럼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열사람은 범사에 감사는 고사하고 단 한 가지도 감사 할 것이 없고 오히려 매사에 원망과 불평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열사람 모두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한센병이라 일컫는 나병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한센병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그 병이 고통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정반대로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피고름이 나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흔히 사람이 질병에 걸리게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간호와 치료를 받게 나병에 걸리게 되면 사랑하는 가족들과 격리되어야 하고 심지어 성전이나 회당에 쫓겨나기 때문에 더더욱 고통스런 질병입니다. 영혼이 죽어서 아픔을 모르는 병이 겉으로 들어난 병 그래서 저주 받았다고 하는, 설령 왕이라고 할지라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대하 26:18~22)18) 웃시야 왕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20)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음을 보고 성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21)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 22) 웃시야의 남은 시종 행적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하였더라.

▶영적인 두려움이 없어진 교만한 병. 점점 몸으로 전이 됩니다. 모세의 누나 미리암도.

▶이렇듯 나병에 걸린 사람은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이 어떻게 범사에 감사를 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의 사람이 어떻게 감사하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었을까요?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 때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할 것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바라는 행복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매일 매일을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가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 화> 한 마을이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시냇물은 모두 말랐고, 논바닥은 쩍쩍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산꼭대기에 있는 나무들은 여전히 푸르고 싱싱한 상태를 유지했지만 냇가에서 자라고 있던 나무들은 금세 말라 죽어버린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나무를 뽑아내고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가뭄이 있기 전, 냇가에 자라고 있던 나무들은 뿌리를 충분히 내리지 않아도 수분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뿌리가 거의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가뭄이 심해져 수분을 공급받지 못하자 죽어버린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풍요 속에서 보호를 받으며 성장한 사람은 작은 어려움에도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맙니다. 그러나 역경을 극복하며 자신의 삶을 단련시켜온 사람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극복하는 방법을 쉽게 찾아냅니다. 땀 흘리지 않고 버는 재물은 달콤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영혼의 독약과 같습니다. 참된 행복은 오랜 가뭄의 시간 마른 땅을 파고 깊이 내린 뿌리를 통해서 우리의 삶을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현실 경제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다 힘든 삶을 살게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이럴 때일수록 감사사의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주님을 찾는 삶이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삶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배하는 삶입니다.

● 가만히 보면 적당히 어두우면 길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암흑 같이 어두우면 빛을 찾기가 쉽겠지요. 우린 참 빛인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우리가 가장 어려울 때 쉽게 봅니다. 바닥을 친다는 말이 이런 듯이 내포 되어 있는 것이지요.

2. 주님께 순종하는 사람들

예수님의 생애를 돌이켜 보면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함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나오는 열 명 한센 병 환자들은 이전에는 각기 따로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나병으로 인해 가족들로부터 버림을 당한 후에 동병상련이라는 말처럼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 서로 의지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였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겠지요. 그 소문을 통해서 자기들의 근본 문제한센병을 고쳐주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서로 처지가 같은 열 사람들은 함께 예수님께 나아올 용기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의 일행을 발견하였을 때 멀리서나마 있는 힘을 다해 소리 질러 도우심을 구합니다.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예수님은 그와 같은 열 명의 병자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거나 지체하지 않으시고 즉시 응답하셨으나 예수님의 응답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여기서 ‘보시고’라는 말(ei[dw)은 힐끗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다, 경험하다, 생각하다, 알다, 주의를 기울이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또한 ‘깨끗함을 받은지라’는 말(kaqarivzw)은 단순과거 수동태 직설법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에 단번 역사가 일어난 것으로 예나 지금이나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주의 말씀이 현실적으로 구체화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열 명의 나환자가 멀리서 부르짖는 소리만 들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가슴으로 느끼시면서 보셨음을 뜻합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열 명의 병자들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아직 병이 낫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레위기의 말씀을 따라 나병이 고침을 받았는지 여부를 확인하게 하기 위해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서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말씀하신 의도는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였을 때 그와 같은 질병은 치료되고 그들이 가정으로 다시 돌아가서 여생을 가족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려지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열 명의 모습은 오늘 우리들이 주님께 나아와 기도할 때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지를 잘 나타내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나 조차에게도 너무 현재의 나만 아는 그래서 미래의 나에게 조차 이기적인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 내일을 모르는 사람일뿐이며 사랑이 식은 자인 것입니다.>

●(시 18: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듣고 믿어야 합니다.

(롬 1: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 같으신 주님의 말씀은 나병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나병보다 더 무서운 영혼까지 멸망시키는 ‘죄’라는 근본까지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능력은 믿음과 순종을 통해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크게 믿는 사람은 순종하기 어려운 것도 순종하지만, 하나님을 잘 몰라서 믿음이 적은 사람은 얼마든지 순종할 수 있는 것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3. 감사하는 단 한 사람

오늘 성경 말씀의 핵심세상적인 들음의 믿음과 순종으로 나병을 고침 받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열 명의 나환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에게 가던 길에 자신들의 나병이 깨끗해진 것을 깨닫고 난 다음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오늘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였을까요? 율법에 명시한대로, 예수님이 명령하신 대로 더욱 빨리 제사장에게 달려가서 완치되었음을 확인하고 속히 집으로 돌아가서 그토록 그리던 가족들과 재회하여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우선적인 일이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열 명 가운데 아홉 명은 그렇게 했겠지만 오직 한 사람은 그렇게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큰소리로 영광을 돌렸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로 다시 되돌아오는 일을 제일 먼저 하였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법대로 사는 것이 우선인가? 그 율법을 주신이의 뜻을 아는 감사가 살아난 자의 양심과 성령의 법을 따르는 사랑의 법이 우선인가?>

▶십자가를 지거나 이웃을 위해 헌신하거나 구제에 감사로 임하는 자는 이미 사랑을 이룬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감사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 꿇는 자는 이미 구원뿐 아니라 천국에 상급이 쌓이는 것입니다.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여기서 ‘영광을 돌리며’라는 말(doxavzwn)은 하나님을 ‘찬양하다, 영화롭게 하다’라는 뜻의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해서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영광을 돌리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수결에 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 명의 나환자 중에 한 사람은 마치 십일조처럼 깨끗이 고침을 받은 자신을 제일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로 감사하는 일에 자신을 기꺼이 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능력을 받아 병 고침으로 내가 그동안 못 누린 행복을 찾아 가는가? 아님, 병을 고쳐 주신 능력자를 찾아가서 감사로 그를 높이고 하나님께 돌아가는가?

(16)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여기서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렸다’는 것은 납작 엎드린 겸손한 모습이며, ‘감사하며’라는 말(eujcaristw'n)은 동분사 현재 능동태로 계속해서 감사하는 모습입니다.

더구나 그 한 사람은 유대인들이 미천하게 여기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그 사마리아 사람은 주님께 감사헌금이나 값비싼 선물을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어서 그저 납작 엎드려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만 하였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사마리아 사람의 모습에 크게 감동을 받으시면서 나머지 감사하지 않는 아홉을 찾으시는 것이었습니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비록 주님께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 한 사람의 감사를 기뻐하셨고 크게 들어 내셔서 감동하셨습니다.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나병에 걸렸던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믿음과 순종으로 고침을 받음으로 잃었던 것을 되찾게 되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회복되었으나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인 죄와 죽음을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되돌아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주님을 감동하시게 함으로 말미암아 육신만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 받음으로 영원토록 행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어졌습니다. 감사는 이렇게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 있는 금고를 여는 열쇠가 감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억지로 할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으로 할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나를 위한 일입니다. <믿음과 순종은> 말씀을 통해 이 땅에 자신을 위한 기적과 표적을 이루는 필수사항입니다. 그러나 감사는 믿는 자가 자원함으로 하늘에 영원히 거룩할 자신을 위해 씨앗을 심어야 할 선택 사항으로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 고후 9:6.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결 론. (요 11:40)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불평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불평도 하고 감사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감사만 합니다. 그 중에 누가 행복한 사람일까요? 요즘 경기가 너무나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은 오늘 성경을 통해서 주신 말씀처럼 믿음순종감사함으로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이며 믿음과 순종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감사의 수맥을 끌어 올려 주님을 감동하시게 하는 행복한 그리스도인,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나누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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